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아르메니아에 유럽연합(EU)과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아르메니아의 EU 통합 추진이 EAEU 회원국으로서의 지위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기존 러시아 측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가 EU 가입 신청과 로드맵 작성 이후에야 EU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파시냔 총리가 국민의 선택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5월 EAEU 국가들이 아르메니아에 EAEU 잔류와 EU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 조직의 규범은 다른 조직의 규범과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르메니아가 EU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존 관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3년간 교역액이 60억 달러를 넘어섰고 한 해에는 120억 달러에 달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해당 수치가 아르메니아와 EAEU 간 교역을 의미하는지 러시아와의 교역을 의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사이에서는 철도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철도 시스템은 2008년 체결된 30년간의 사업권 계약에 따라 러시아 철도공사(RZhD)가 소유하고 있다.
파시냔 총리는 러시아 철도공사의 아르메니아 철도 운영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철도 통제가 국제적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저해한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지난 2월 RZhD의 역할 종료를 처음 요구했다.
이후 파시냔 총리는 지난 7월 RZhD의 운영권과 관련해 중재 절차와 연간 20억 달러의 비용 문제를 거론했고, 러시아 측에서는 이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파시냔 총리는 8월 초 러시아 철도공사의 관리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대신 러시아와 타협안을 협상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철도 사업권 문제와 관련해 서방이 아르메니아에 러시아 요소를 교통 부문에서 제거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며 서방을 비판했다. 러시아 측은 그 대가로 수백만 달러 규모의 투자와 경제적 타당성이 불분명한 사업에 대한 접근을 약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르메니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지위 역시 러시아와의 갈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2024년 초 CSTO 회원국 지위를 동결했으며, 파시냔 총리는 CSTO 복귀가 현 정부의 향후 5개년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의 이번 발언은 아르메니아의 EU 통합 추진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경제·안보 체제와의 관계를 둘러싼 양국 간 입장 차이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