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일 토요일 오전, 중국공상은행(ICBC) 런던지점 직원 9명이 긴급 소집됐다. 중국 본사가 춘절 연휴로 업무를 중단하기 직전,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의 자금 13억 달러를 신속하게 중국으로 이체해 달라는 요청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번 송금은 미국 법무부가 화웨이와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를 상대로 사기와 대이란 제재 위반 등 혐의를 제기한 지 불과 며칠 뒤 이뤄졌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창업자의 딸로, 당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캐나다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ICBC 내부 기록에 따르면 화웨이는 영국 법인 계좌에 있던 이른바 ‘비상 자금’을 중국으로 돌려보내길 원했다. 런던지점 직원들은 긴급 요청의 배경에 화웨이를 둘러싼 부정적인 보도가 있을 가능성을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ICBC 런던지점은 화웨이와의 거래를 일시 중단하고, 예치금이 미국이 제기한 범죄 혐의와 관련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자료를 요구한 상태였다. 그러나 화웨이 측은 자료를 제출하는 대신 은행과 긴급 대면회의를 진행했고, 베이징 본사에 이미 송금 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날 오전 8시, 베이징 본사 임원들은 런던지점 직원들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본사 측은 런던지점의 운영 자금을 보장하겠다고 설명했고, 직원들은 화웨이 런던 계좌에서 중국 선전 계좌로 13억 달러를 이체했다.
이 거래는 런던지점의 자금세탁 방지 담당 부서에 이틀 뒤에야 알려졌다. 당시 자금세탁 신고 책임자는 주말에 직원들을 소집해 대규모 송금을 처리하는 방식이 사기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 결정을 본사가 무시했으며, 자금이 미국이 제기한 범죄 혐의와 연관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부 조사에서는 화웨이가 미국의 자산 동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자금을 중국으로 송환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이는 내부 담당자가 제시한 가능성으로, 실제 자금 송금 목적이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런던지점의 자금세탁 방지 담당자가 화웨이에 대한 강화된 실사를 권고하자, 런던지점 최고경영자는 베이징 본사의 지시라며 화웨이와의 거래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화웨이는 국제 결제와 급여, 공급업체 대금 지급 등에 사용할 새로운 현금 계좌 개설도 추진했다.
화웨이는 당시 시리아와 이란, 쿠바 등 미국의 제재 대상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부 제재 대상 러시아 기관과 거래할 가능성도 인정했지만, 관련 거래는 내부적으로 별도 표시해 ICBC 런던지점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외부 실사 업체는 화웨이를 중국 정부와의 연계 의혹, 부패와 사기 혐의 등으로 인해 ICBC 런던지점의 ‘매우 높은 위험’ 고객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ICBC 경영진은 화웨이와의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0년에 걸친 480만 건의 비공개 은행 기록을 분석한 결과, ICBC 런던지점이 베이징 본사의 압박 속에서 내부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위반하거나 위험 신호를 무시한 사례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ICIJ는 화웨이뿐 아니라 중국 담배기업과 중국 부동산기업 등 정치권과 연결된 고객들도 ICBC 런던지점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부 거래에서는 고객의 이사와 재무 정보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대출과 금융 지원이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ICBC는 중국 최대 국유 상업은행으로, 내부 기록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해외 진출 정책과 일대일로 구상 등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상업적 가치뿐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전략적 목표에 기여할 가능성도 고려했다.
ICIJ는 ICBC 런던지점이 화웨이의 해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을 제공했으며, 화웨이의 첫 중국 국내 채권 발행에서도 주요 인수기관 가운데 하나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ICBC가 2003년 이후 화웨이 또는 화웨이 장비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기업에 약정한 대출 규모는 2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ICBC 런던지점은 이후 화웨이를 계속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했지만, 2023년에도 베이징 본사의 요청에 따라 실사 자료가 제출되기 전에 거래를 먼저 처리하는 방안을 허용했다. 본사 측은 화웨이가 매우 중요한 고객이라며 결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ICBC 런던지점의 전직 위험관리 책임자는 당시 화웨이 사건이 은행 내부의 문제 있는 문화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본사 관계자 역시 대규모 거래에 대해 자금세탁 방지 담당자의 승인을 의무화하는 등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화웨이는 미국 법무부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관련 사건은 뉴욕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ICBC와 화웨이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요청한 반복적인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