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오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즉시 효력을 갖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에너지 휴전이 시작됐다"며 "양측이 합의했다. 깨지 말라!"고 적었다. 적용 범위, 기간, 위반 감시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12일까지 러시아 정부는 합의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공격이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크렘린 "접촉 진행 중"…합의 확인은 없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에너지 휴전에 관한 질문에 "접촉이 진행 중"이라며 "이 주제에 관해 할 말이 생기면 알리겠다"고만 답했다고 NBC뉴스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확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것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오히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러시아 국영통신을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새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전쟁을 멈추려면 매우 책임 있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라며 "젤렌스키는 아직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우크라이나에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젤렌스키 "처음 듣는 소식"…공격은 계속됐다고 주장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발표가 "나에게도 새로운 소식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언론 보도로 이 소식을 접했다는 것이다. 그는 엑스(X)에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지지하며, 러시아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망 공격을 멈추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12일 폴란드 바르샤바 안보포럼에서는 러시아가 동의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러시아가 하르키우 열병합발전소와 키이우의 발전시설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NBC뉴스도 12일 아침 하르키우 외곽 에너지 시설이 공격받았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하늘이 하루 종일 러시아 샤헤드 드론으로 뒤덮였다"고 말했다.
이틀 전 '경유 거래'와의 연결고리
이번 발표는 9일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화 뒤 공개된 미·러 경유 공급 합의 직후에 나왔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산 경유를 처음에 30만t 이상, 11월에 50만t, 이후 100만t, 단기간 안에 300만t을 들여올 계획이다. 미 재무부는 2027년 4월 7일까지 유효한 한시 허가를 내줬다. AP는 2022년 이후 통상적인 30일 범위를 넘어 러시아 경유 제재를 완화한 첫 사례라고 전했다. 대금을 누가 치르는지, 언제 인도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유 가격은 11일 기준 갤런당 평균 6.28달러로 1년 전 3.67달러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2월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막힌 것이 경유 대란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도 원인으로 지목해 왔다.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을 낮추려는 계산이 경유 거래와 에너지 휴전 발표 모두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경유 거래를 "강한 동맹국의 약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상원에서도 여야 의원 7명이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고 TIME이 보도했다.
동맹국, 휴전은 환영·경유 거래는 비판
캐나다 총리실은 마크 카니 총리가 1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발표문에 따르면 카니 총리는 미·러 경유 거래가 "우크라이나와 캐나다, 동맹국들의 노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러시아에 추가 수입을 안겨 불법적이고 부당한 전쟁 자금을 대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에너지 기반시설과 민간인에 대한 모든 공격이 즉시 중단돼야 한다"며 휴전 자체는 지지했고, 별도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AFP통신은 영국·프랑스·캐나다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에너지 휴전은 지지하면서 경유 거래는 비판했다고 전했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반복된 '에너지 휴전'…선례는 엇갈려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 휴전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9월 14일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당시 러시아가 어떤 합의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며 푸틴 대통령이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공격은 이어졌다.
2025년 3월 18일에는 트럼프·푸틴 통화 뒤 러시아가 30일간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렘린은 이 조치가 같은 해 4월 18일 만료됐다고 밝혔고, 그 기간에도 양측은 서로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30차례가 넘는 러시아의 공격이 있었다고 집계했다.
이번 발표는 러시아의 공식 확인, 휴전 기간, 감시 체계가 모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보다도 불확실성이 크다. 러시아는 지난 10일 자포리자 공습으로 어린이 4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졌다고 우크라이나 측이 밝히는 등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난방 수요가 본격화하는 겨울을 앞두고 크렘린이 휴전에 공식 동의할지, 그리고 경유 거래가 미국의 대러 압박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향후 협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