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해서웨이가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기업 벤딩스푼스(Bending Spoons, BSP)에 약 3억 3,000만 달러를 더 넣기로 했다. 벤딩스푼스는 10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낸 공시(6-K)에서 버크셔에 신주 1,000만 주를 주당 33달러에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다고 밝혔다. 거래가 끝나면 버크셔의 지분은 약 4%가 된다. 버크셔는 지난 7월 벤딩스푼스의 나스닥 상장 때도 6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적 투자액은 약 9억 3,000만 달러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벤딩스푼스 주가는 이날 장중 한때 58.56달러까지 오른 뒤 전날보다 41.2% 오른 53.46달러에 장을 마쳤다. 거래량은 약 1,960만 주로, 평소 평균(약 263만 주)의 7배를 넘었다. 공모가 29달러와 비교하면 석 달 반 만에 약 84% 오른 셈이다.
이름이 낯선 이 회사는 무엇을 하는 곳이고, 왜 신생 기술주 투자에 보수적인 버크셔의 돈을 끌어들였을까.
1. 한눈에 보는 벤딩스푼스
| 항목 | 내용 |
|---|---|
| 본사 | 이탈리아 밀라노 |
| 설립 | 2013년 |
| 상장 | 2026년 7월 1일,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티커 BSP) |
| 대표 | 루카 페라리(공동창업자·회장 겸 CEO, 1985년생) |
| 정규직 | 1,743명 |
| 주요 브랜드 | AOL, 에버노트, 비메오, 위트랜스퍼, 이벤트브라이트, 브라이트코브, 스트림야드, 코무트, 트랙티브, 하베스트, 레미니, 에어테이블 |
| 시가총액 | 약 340억 달러(10월 14일 종가, 야후 파이낸스 기준) |
사명은 영화 '매트릭스'의 "숟가락은 없다(There is no spoon)" 장면에서 따왔다. 염력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아이가 주인공에게 "숟가락을 구부리려 하지 말고, 숟가락이 없다는 진실을 깨달으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2. 사업 모델: '한물간 앱'을 사서 다시 짓는다
벤딩스푼스는 스스로를 디지털 사업을 "인수하고 변혁하는(acquire and transform)" 회사라고 설명한다. 새 서비스를 만들어 키우기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지만 성장이 멈춘 소프트웨어·인터넷 서비스를 사들인다.
인수 뒤의 방식은 거의 정해져 있다.
- 사람을 줄인다. 인수한 회사 직원 상당수를 내보내고, 벤딩스푼스 내부 인력(이른바 '스푸너')으로 구성한 소규모 팀이 운영을 맡는다.
- 코드를 다시 쓴다. 낡은 소프트웨어를 자체 기술 플랫폼 위로 옮기고, 화면과 기능을 정리한다.
- 수익화를 조인다. 무료 기능을 줄이고 구독 요금 체계를 재설계한다.
- 팔지 않는다. 사모펀드처럼 몇 년 뒤 되파는 대신 계속 보유하며, 거기서 나온 현금으로 다음 회사를 산다.
1950~60년대 미국의 복합기업(콘글로머릿)이나, 쇠락한 섬유회사를 사들여 투자 지주회사로 바꾼 버크셔 자신의 역사와 닮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 경제지 인베스터스비즈니스데일리는 이번 투자를 다룬 기사에 "버크셔의 새 베팅, 벤딩스푼스는 버크셔와 많이 닮은 회사"라는 제목을 달았다.
회사 측은 2025년 매출 기준 합계 약 4,000억 달러에 이르는 1,000개 이상의 디지털 사업을 잠재 인수 후보로 꼽았다고 밝혀 왔다.
인수의 역사
벤딩스푼스는 초기에는 사진·영상 편집 등 소비자용 모바일 앱 사업으로 출발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2022년 메모 앱 에버노트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이후 대형 인수가 이어졌다.
- 위트랜스퍼(WeTransfer): 대용량 파일 전송 서비스. 2024년 인수 후 대규모 감원으로 화제가 됐다.
- 비메오(Vimeo)·브라이트코브(Brightcove): 개인·기업용 동영상 호스팅. 비메오는 미국 상장사였다.
- AOL: 1990년대 미국 인터넷의 상징이던 이메일·포털. 야후로부터 인수했다.
-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 행사 개설·티켓 판매 플랫폼.
- 트랙티브(Tractive): 반려동물 위치·건강 추적기. 2026년 5월 기업가치 7억 5,900만 달러에 인수를 마쳤다.
- 에어테이블(Airtable): 노코드 데이터베이스·협업 도구. 기업가치 12억 9,000만 달러에 인수해 9월 초 완료했다.
- 미로(Miro): 온라인 화이트보드 협업 도구. 9월 10일 기업가치 13억 5,500만 달러(순현금 포함 지분가치 약 17억 9,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미로는 2022년 투자 유치 때 175억 달러로 평가받았던 회사다. 4분기 완료가 목표다.
미로와 에어테이블은 모두 저금리 시기 '유니콘'으로 고평가됐다가 성장이 둔화한 기업이다. 벤딩스푼스가 이 같은 '거품 이후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싼값에 사들이는 대표적 인수자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 숫자로 본 벤딩스푼스
빠르게 커지는 매출, 대부분은 인수 효과
- 2026년 1분기: 매출 6억 130만 달러, 전년 대비 132% 증가. 매출의 약 84%가 구독, 12%가 광고에서 나왔다.
- 2026년 2분기: 매출 7억 400만 달러(전년 3억 1,100만 달러 대비 126% 증가), 영업이익 2억 4,000만 달러, 순이익 1억 7,700만 달러(순이익률 25%).
- 2026년 연간 전망: 매출 27억 8,000만28억 2,000만 달러, 조정 영업이익 14억 6,000만15억 1,000만 달러(에어테이블 기여분 제외).
다만 성장의 대부분은 새로 산 회사의 매출이 더해진 결과다. 2분기 기준 기존 사업만 놓고 본 유기적 성장률은 약 3%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쿼터 요약 기준). 회사의 성장은 결국 '얼마나 좋은 회사를 얼마나 싸게 계속 살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벤딩스푼스 제품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5억 명 이상, 유료 구독자는 900만 명 이상이며, 단일 고객 비중이 매출의 1%를 넘지 않는다.
무거운 빚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은 차입으로 조달했다. 2분기 말 순부채는 40억 9,000만 달러, 현금은 7억 9,300만 달러였다. 상장 직후에도 5억 9,000만 유로 규모의 유로화 대출을 새로 받았다. 야후 파이낸스 기준 부채비율(총부채/자기자본)은 약 394%에 이른다.
이번 버크셔 자금 3억 3,000만 달러의 용도에 대해 회사는 "일반 운영 목적과 신규 인수"라고 밝혔다. 미로 인수(현금 거래)를 앞둔 시점에 차입이 아닌 자기자본을, 그것도 장기 보유로 알려진 투자자로부터 확보했다는 점이 시장이 반긴 대목이다.
4. 해자는 '사람': 지원자 80만 명 중 286명
벤딩스푼스의 경쟁력은 특정 기술보다 조직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누구든 낡은 앱을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을 소수 인력으로 빠르게 다시 짜서 이익을 내는 능력은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약 80만 명이 벤딩스푼스에 지원했고, 실제 채용된 인원은 286명이었다. 합격률로 따지면 0.04% 미만이다. 회사는 10년 넘게 인수·재건을 반복하며 쌓은 자체 도구와 데이터도 강점으로 내세운다.
경영진도 젊다. 루카 페라리 CEO는 1985년생, 인수를 총괄하는 공동창업자 프란체스코 파타르넬로 부회장은 1986년생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990년생 다비데 스카르파차와 1992년생 엔리코 마르티넬리가 공동으로 맡고 있고, 최고기술책임자(CTO) 프란체스코 만코네는 1995년생이다.
5. 버크셔는 왜 샀나
버크셔가 상장 직후의 기술주, 그것도 미국 밖 기업에 투자하는 일은 드물다. 미 금융주간지 배런스가 이번 투자를 "변화구(curveball)"라고 부른 이유다. 다만 전례가 없지는 않다. 버크셔는 2020년 데이터 클라우드 기업 스노플레이크의 기업공개(IPO)에, 2021년에는 브라질 핀테크 누뱅크(누홀딩스)의 상장 전 투자에 참여했다.
벤딩스푼스는 버크셔가 좋아하는 몇 가지 조건을 갖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반복 매출: 매출의 대부분이 매달 들어오는 구독료다.
- 자본 배분 기계: 번 돈을 다시 인수에 넣어 복리로 키우는 구조가 버크셔 자신의 방식과 같다.
- 팔지 않는 원칙: 지금까지 의미 있는 규모의 사업을 매각한 적이 없다.
- 유리한 가격: 버크셔는 이번에 공모가 29달러, 직전 종가 37.86달러보다 낮은 33달러에 신주를 받는다. 시장에서 사지 않고 회사로부터 직접 사들이는 구조여서, 발표 당일 종가 기준으로 이미 약 60%의 평가이익이 난 셈이다.
이번 투자를 버크셔 내부에서 누가 결정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워런 버핏은 2025년 말 CEO에서 물러났고, 현재 버크셔는 그레그 에이블 CEO 체제다.
6. 위험 요인
벤딩스푼스에 대한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 인수 의존 성장: 유기적 성장률이 한 자릿수 초반이다. 인수할 만한 대상이 줄거나 가격이 오르면 성장도 꺾인다. 인수가를 잘못 매기거나 통합에 실패하면 구조가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롤업(roll-up)' 전략의 고전적 약점이다.
- 부채: 순부채가 40억 달러를 넘는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웃도는 고금리 환경은 차입 인수에 부담이다.
- 이용자·평판 리스크: 인수 후 대규모 해고, 무료 기능 축소, 요금 인상은 반복적으로 이용자와 업계의 반발을 불렀다. 충성 고객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 밸류에이션: 주가는 최근 12개월 주당순이익(0.62달러) 기준 약 86배에 거래된다. 야후 파이낸스 집계 애널리스트 평균 목표주가는 47.45달러로 현재가보다 낮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9월 29일 '시장수익률 하회' 의견을 유지하며 목표가를 39달러에서 36달러로 내렸다.
- 급등 이후 변동성: 주가는 8월 중순 약 58달러까지 올랐다가 버크셔 발표 직전 37달러대로 밀렸고, 하루 만에 다시 50달러대로 올라섰다.
전망
다음 관전 포인트는 11월 12일로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다. 회사가 제시한 3분기 매출 전망은 7억 3,300만~7억 4,500만 달러다. 에어테이블 인수 효과가 처음 반영되는 분기이고, 미로 인수가 4분기 안에 마무리될지도 함께 지켜볼 대목이다.
버크셔의 이름은 벤딩스푼스에 '장기 자본'이라는 신뢰를 빌려줬다. 그러나 그 신뢰가 유지될지는 결국 이 회사가 앞으로도 좋은 회사를 적정한 값에 사서, 이용자를 잃지 않으면서 이익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낡은 소프트웨어를 다시 쓰는 회사가 스스로의 성장 공식을 얼마나 오래 '다시 쓸' 수 있을지가 남은 질문이다.
참고·사실 귀속
- 벤딩스푼스, SEC 제출 6-K(2026-10-14) — 버크셔 대상 사모 신주 1,000만 주, 주당 33달러, 지분 약 4%, 4분기 거래 완료 예정, 자금 용도
- 벤딩스푼스,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2026-08-13) — 매출·이익·순부채·연간 전망, 트랙티브·에어테이블 인수
- 벤딩스푼스 IPO 가격 결정·완료 공시, AP·악시오스(2026-07-01) — 공모가 29달러, 공모 규모 약 16억 8,000만 달러
- 야후 파이낸스, BSP 시세·기업 개요·경영진·애널리스트 의견(2026-10-14 종가 기준)
- 모틀리풀, "Warren Buffett's Berkshire Hathaway Just Bet Nearly $1 Billion on This IPO Stock"(2026-10-14) — IPO 당시 6억 달러 투자, 주가 추이
- 굿윈 프록터·딜룸 등, 미로 인수 합의 보도(2026-09) — 기업가치·지분가치, 2022년 기업가치
- 배런스, 인베스터스비즈니스데일리 기사 제목(2026-10-14)
- 월스트리트저널(재인용) — 지원자 약 80만 명 중 286명 채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