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전국 곳곳에서 우파 성향의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엘라 대통령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지난 8월 그가 취임한 이후 야권이 처음으로 세를 과시한 자리다.
취임 두 달 만의 첫 대규모 야권 시위
프랑스24와 AFP통신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의 시민이 전국 여러 도시 거리로 나와 데 라 에스프리엘라 정부의 정책에 항의했다. 시위는 큰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시위대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연금 개혁에도 반대했다.
수도 보고타 집회는 구스타보 페트로 전 대통령이 이끌었다. 노동조합원과 원주민, 학생, 여성운동가들이 함께했고, 일부 시위대는 수십 년 만에 가장 우파적인 정부로 꼽히는 현 정부를 향해 "무너질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 6월 대선 결선에서 데 라 에스프리엘라에게 1%포인트도 안 되는 차이로 패한 좌파 이반 세페다 상원의원도 보고타 행진에 참석했다.
"어렵게 얻은 것들을 잃을 위기"
페트로 전 대통령은 콜롬비아 첫 좌파 정부를 이끌며 공립대학 무상 접근을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기록적인 폭으로 올렸으며 노동 여건을 개선했다. 좌파 진영은 미국의 지지를 받는 백만장자 출신 후임 대통령 아래에서 이런 성과가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데 라 에스프리엘라는 중남미를 휩쓰는 친미 우파 물결의 일원으로 꼽힌다.
보고타에서 만난 교사 에스테르 게라(32)는 AFP에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느낌이고, 그나마 얻어낸 것마저 잃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LGBTQ) 공동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온 공무원 운소 바르가스(44)는 "오랫동안 싸워 얻은 모든 것이 오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데 라 에스프리엘라는 콜롬비아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보수층은 10년 전 무장혁명군(FARC)이 해산할 때 무장해제를 거부한 게릴라 조직들에 강경 대응하는 그를 지지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그가 취약한 평화 프로세스를 위태롭게 하고 소수자 권리를 위협하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는 취임 당시 범죄와의 전쟁과 '마약 테러리스트' 척결을 공약했다.
시위 전날 진압 권한 강화 포고령
데 라 에스프리엘라 대통령은 시위 하루 전 재산 피해나 도로 봉쇄가 발생할 경우 당국이 시위를 진압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그는 엑스(X·옛 트위터)에 "수백만 시민의 권리를 짓밟는 폭력과 기물 파손, 봉쇄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썼다.
야권은 공권력 투입을 예고한 이 조치를 비판 세력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교사 오스카르 페레스(40)는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는 것이지만,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고 말했다.
친미·친이스라엘 외교에도 반발
시위대는 정부의 외교 노선에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변호사 출신인 데 라 에스프리엘라 대통령은 페트로 전 대통령이 가자지구 공세를 이유로 단절했던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했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논쟁적인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열성적인 미국 동맹이기도 하다. 보고타에서는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웠고 다른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 제2도시 메데인에서는 한 시위 참가자가 "양키 고 홈"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올렸다.